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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읽기 전 꼭 알아야 할 5가지- 시대와 맞선 한 청년의 불꽃 같은 이야기

독서전문가 2025. 2. 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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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깊이 읽기:

1. 조영래 작가에 대하여:

조영래(1947~1990)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로, 우리 사회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지만, 이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유신 독재에 항거하며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1975년 석방된 이후에는 노동자, 빈민, 학생운동가들의 변론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였다.

조영래가 『전태일 평전』을 집필한 것은 그가 변호사로 활동하기 이전인 197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그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복역한 뒤 출소하여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던 시기였고, 한국 노동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생존자의 증언을 채록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전태일 평전』은 단순한 전기적 서술이 아니라, 전태일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당시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형식의 저작이기도 하다.

2. 성장과 노동자의 삶:

『전태일 평전』은 어린 시절 전태일이 겪었던 가난과 노동자로서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내수공업을 하였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가족은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녀야 했다.

전태일은 학업에 대한 열망이 컸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그는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하여 봉제 공장에서 수습공으로 일하게 된다. 당시 ‘평화시장’으로 대표되는 봉제업계는 극악한 노동환경으로 악명 높았다. 하루 14~16시간의 중노동,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작업 환경,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시다’라고 불린 수습공들은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으며, 극단적인 경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전태일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하면서 노동자로서의 고된 삶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료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가지며 개선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3. 노동 현실과 각성:

전태일이 노동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계기는 동료들의 비참한 삶을 직접 목격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동료 노동자들이 영양실조와 과로로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특히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으며, 제대로 된 의료 혜택도 받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전태일은 ‘바보회’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며 노동법을 공부했다. 당시 노동법에는 근로기준법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전태일은 이 법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를 무시했고, 정부 기관 역시 노동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에 전태일은 점차 노동운동가로서의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개인적인 개선 요구가 아닌, 구조적 변화를 위한 행동을 결심하게 된다.

4. 분신 항거와 노동 운동의 불씨: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서울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절규는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외침으로 남아 있다.

전태일의 분신 항거는 단순한 개인의 저항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 의식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희생은 이후 노동운동을 조직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의 죽음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그의 뜻을 기리며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 생전 모습 (사진출처:전태일 기념관)

5. 전태일 정신과 그 후:

전태일의 희생은 한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은 점점 조직적으로 변모하였으며,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80년대 들어 민주노조 운동이 활성화되었고, 1990년대에는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전태일 정신은 단순히 노동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과 인권 문제 전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희생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동환경 개선과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전태일 평전』은 단순한 전기적 기록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태일이 외쳤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은 지금도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메시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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