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419692fb0ee168ae.html 박은식의『한국통사』해설:올바른 역사 의식과 한국사 공부에 필요한 책
1. 작가 박은식에 대하여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초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사상가였다. 그는 유교적 소양을 바탕으로 전통 학문에 깊이 통달한 인물이었으며, 개화기 이후 근대 사상과 서구 역사학에도 눈을 뜨며 사상적 전환을 겪었다. 박은식은 1898년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언론 활동에 참여하며 언필로써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후 1910년 한일병탄이 현실이 되자 망명하여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제2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신채호와 더불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깊이 천착한 인물이다. 신채호가 민족의 실체를 "혈통"으로 보았다면, 박은식은 "정신(혼)"으로 파악했다. 이른바 ‘국혼론’이다. 이 국혼이 살아 있는 한 나라는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신념은 박은식 사상의 핵심이다. 『한국통사』는 이러한 사상이 구체화된 대표작으로, 단순한 사건의 기록을 넘어 민족정신의 보존과 재건을 위한 ‘역사적 투쟁’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2. 『한국통사』의 "한국의 지리와 역사 개요"
『한국통사』는 서두에서 조선이라는 국가가 어떤 자연환경 속에서 성장해왔는지를 서술하며,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연속성에 대해 강조한다. 그는 한국을 ‘삼한’의 전통에서부터 출발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으로 이어지는 정통성과 자주성을 가진 민족으로 본다.
특히 한국의 지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외세의 침략이 끊임없었던 이유를 자연지리적 조건에서 찾는다. 이는 단순한 환경 묘사를 넘어, 왜 한국이 역사적으로 주체성을 지켜야 했는가에 대한 이념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동시에 그는 한국의 역사적 특징을 ‘국난 속에서도 불굴의 민족정신을 유지한 역사’로 규정한다. 이러한 개요는 본격적인 식민 침략 서술에 앞서 민족의 자긍심을 고양하려는 의도로 구성되어 있다.
3. 흥선대원군의 개혁부터 아관파천 후 친일 정권까지의 사건
박은식은 흥선대원군의 개혁을 한국 근대사의 전환점으로 본다. 대원군은 세도정치의 폐단을 척결하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경복궁 중건과 대대적인 군정 개혁, 서원 철폐,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등을 통해 조선의 자주성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쇄국정책은 외세와의 충돌을 불러오고, 결국 운요호 사건과 병인양요, 신미양요 같은 외침의 원인이 된다.
이후 고종의 친정과 개화파의 집권은 근대화 시도로 이어졌지만, 조선은 내부의 구세력과 외세의 압박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갑오개혁,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의 사건은 백성들의 반발과 혼란을 증폭시켰다. 박은식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외세의 개입과 조선 정부의 무능함으로 인한 국권 침탈의 전조로 해석한다.
특히 아관파천(1896) 이후 조선 정부는 러시아 세력에 의존하며 친러 정권이 성립되지만, 곧이어 일본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의 정권들은 일본에 의존하는 친일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박은식은 이를 ‘국혼이 약화된 결과’로 본다. 그는 민족의 주체적 대응 없이 외세에 기대려 한 지도층을 강하게 비판한다.
4. 대한제국의 성립과 일제 침략 과정
1897년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며 자주 독립 국가임을 선언한다. 박은식은 이 시도를 민족 자주의 마지막 불꽃이라 평가하면서도, 실질적인 국력 강화 없이 형식만을 앞세운 외피적 독립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대한제국은 각종 개혁 조치를 시도했지만, 내부 부패와 무능, 그리고 일본의 압박 속에 그 개혁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을사늑약(1905), 정미7조약(1907), 한일병합(1910)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조약과 사건은 모두 일본의 치밀한 외교 전략과 조선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맞물려 일어난 것이라 평가한다.
박은식은 특히 을사오적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들이 민족을 배반하고 권력과 부를 택한 결과로 국권이 침탈되었다고 본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내적 요인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러한 비판은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후대에 대한 경고이자 민족정신 회복을 위한 각성의 요청이다.
5. 『한국통사』의 국혼론과 역사관
『한국통사』의 핵심은 박은식이 제시한 ‘국혼론(國魂論)’이다. 그는 국가의 본질을 물리적 국토나 제도보다 정신적 정체성, 즉 ‘혼’에 둔다. 그는 “국가는 멸망할 수 있으나 국혼은 멸망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사상은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절박한 철학이었다.
박은식에게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국혼’을 계승하는 도구이며, 민족의식의 뿌리를 되살리는 정신적 무기였다. 따라서 『한국통사』는 냉철한 분석과 함께 감성적 호소가 담긴 문체로 서술되어 있으며, 역사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드문 사례로 회자된다.
또한 그는 서구적 실증주의 역사학과는 달리, 도덕성과 민족정신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역사는 민족의 교훈과 재생을 위한 도덕적 산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역사관이 단순한 객관적 사실보다는 민족의 ‘의지’와 ‘혼’을 중시하는 점에서 강한 주관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통사』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그것은 조선 말기의 비극을 기록한 ‘국사적 참회록’이자,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정신적 투쟁서’이다. 박은식은 이 책을 통해 조선의 멸망을 단순히 외적 침탈의 결과가 아닌, 내적 정신력의 붕괴로 진단함으로써 민족 내부의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당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한국통사』는 민족의식 고양을 위한 필독서로 읽혔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나침반으로 기능했다. 박은식의 역사 서술 방식은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으나, 당시 민족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감성의 역사학’으로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결국 『한국통사』는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기록한 민족정신의 기록이며, 동시에 정신사적 선언문이다. 오늘날에도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지금 국혼을 지키고 있는가?”라고. 그 질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민족의 뿌리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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